새해들어 세운 목표 중 하나는 글쓰기 연습이었다. 그래서 새해가 밝기 전, 12월 말부터 필사 스터디를 시작했다. 리더가 매일 글을 선정해서 채팅방에 올려준다. 그럼 이걸 베껴 쓰고나서 사진으로 찍어서 단체 채팅방에 올리면 된다. 처음 한 달은 칼럼을 베껴썼다. 연초에 재택 근무를 하면서 시간도 많고 별달리 약속도 없어서 빼먹지 않고 베껴쓸 수 있었다. 칼럼 필사만 한 달 내내 하다보니 지겨워진 탓에 서평 필사 스터디로 옮겼다. 꽤 재미있는 서평도 있고해서 따라쓰다가 서평에 소개된 책을 사 보기도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라 실망하기도. 매일 읽고 베껴쓰다보니 '필사 스터디'지만 평소 꾸준히 읽는 습관이 부족했던 내겐 '읽기 스터디'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많은 것들을 얻은 스터디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글쓰기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나는 아직 글쓰기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직 글을 분석하면서 읽지는 못한다. 글의 구조나 문장과 단어를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기 보다는 무작정 따라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래도 글쓰기 체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예전엔 글을 쓰려고 앉으면 십 분이 멀다하고 딴 생각을 하거나, 문단을 끝내고 헤메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하루에 적으면 한 시간, 많으면 두 시간씩 매일 글을 베껴쓰다보니 직접 글을 쓸 때에도 집중력을 꽤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직업으로 글쓰기를 하는 분들이 왜 필사 연습을 그렇게 추천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쨌든 이것도 노동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는 단어의 폭도 넓어졌다. 다양한 필자들이 쓴 생소한 주제의 글 덕분이다. 아무래도 직업인으로 살다보면 생활 반경이나 생각하는 폭은 고정되기 마련인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선정하는 글들을 베껴쓰다보니 평소에 잘 읽지 않던 글을 읽게 된 거다. 게다가 그냥 읽는 것도 아니라 손으로 베껴 읽는 것. 어느날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데 내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툭, 하고 써서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던 점들도 있다. 우선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글을 베껴쓴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글 자체가 내가 관심있어 하거나 혹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들이는 시간대비 내가 얻는 것이 적다고 느꼈다. 그날의 필사를 마치면 문장들은 곧 흩어지고, 마치 내가 글을 쓴 것마냥 열심히한 기분만 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저자들의 글을 다양하게 베껴 써 보는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베끼면서 딴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슨 말이냐면, 눈과 손은 글을 베껴쓰면서 머리로는 오늘 있었던 일이나 누가 했던 말 같은 걸 곱씹어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신기한 경험임에는 틀림없지만, 필사를 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문장마다 소리내어 읽고 외워서 따라쓰기를 반복했는데,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썩 좋은 방법은 아닌 거 같다.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필사는 꼭 한 번 해볼 만한 연습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글쓰기가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를 위한 기초 체력 기르기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피드백을 받는게 좋은 글을 쓰는데 훨씬 도움이될 듯. 그래서 결국 글을 직접 써보는 수업에 등록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괜찮았던 글을 추려서 베껴 쓰는 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필사를 하면서, 필사를 평생의 취미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무작정 글을 따라 쓰긴 했지만, 그래도 글을 '읽는' 행위에 가까운지라 글에 감정 이입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떨때는 글에 드러난 필자의 심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런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심정이 느껴진 때가 있었다. 어느 지긋하신 아동문학 평론가의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을 담은 글을 베낄 때였다. 당신의 소년 시절 느꼈던 따뜻한 크리스마스 명동의 풍경과, 그 시절을 추억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어느 노인의 심정이 동시에 내게 다가왔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몰랐던 감정. 나는 그래서 앞으로도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글이 있다면 꼭 한 번 베껴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