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었다. 서울은 2018년 이후로 3년 만의 한파 경보라고 했다. 제주도에는 한파 경보가 생긴 이래 57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한파 경보가 내렸다. 퇴근길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 때문에 사람들은 발이 꽁꽁 묶여 버렸다. 나는 영하의 날씨에 수도관이 얼어붙을까 수돗물을 미리 틀어 놓았다. 하지만 오래된 연립 주택인 우리 집은 온수관이 얼어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미처 대비를 못 한 변기 쪽은 아예 수도관을 녹일 수도 없어 한동안 탱크에 물을 받아 내려야 했다.

눈이 많이 오던 날, 나는 빗자루 소리에 문밖을 나섰다. 그제야 폭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빗자루 소리는 집 앞 00식당 주인 할아버지의 빗자루 소리였다. 00식당은 이 부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법 오래되고 맛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사장님은 매일 아침저녁 쓰레기를 내다 버리며 빗자루로 골목을 청소하곤 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쓰레기가 아닌 눈을 쓸고 계셨다. 나는 편의점에 가 콜라를 사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집으로 들어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 나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사장님 옆에서 눈을 쓸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의 골목은 작은 화물차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게다가 00식당과 우리 집은 언덕배기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오가는 상인들이 힘에 부쳐서 걸어 올라가곤 하는 곳이다. 어르신들도 이곳에서는 힘겹게 올라가신다. 무작정 언덕부터 눈을 쓸기 시작했지만, 언덕을 다 내려왔을 때쯤에는 눈이 또 쌓여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올라가 쓸어야 했다. 어느 정도 쓸었을 때 사장님은 식당에서 소금 한 바가지를 들고 오셨다. 언덕에 소금을 뿌리며 넌지시 나에게 앞집에 사는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사장님과는 그간 오가며 서로 얼굴은 익었지만, 통성명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눈을 치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사장님은 가게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은 눈이 많이 왔지만 참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잠깐 집을 나서는 길에 언덕에서 승용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간밤에 눈이 더 온 탓이었다. 간신히 언덕 위까진 올라왔지만, 언덕을 넘을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헛발질을 하는 경주마처럼 바퀴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뒤에서 조금만 밀어주면 될 텐데 싶어 집을 나서는 길에 차를 밀어주었다. 어젯밤 00식당 사장님과 눈을 쓸어 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승용차들이 언덕을 넘기는 커녕 언덕까지 오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참 다행스러웠다. 때마침 가게로 돌아오시는 00식당 사장님과 마주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였다고 걱정하셨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나는 계약이 끝나면 철새처럼 또 어디서 살아 볼까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이 도시에 아무 연고가 없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자유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무관심했던 건 아닌지. 내 주변을 그저 방관하며 나와는 상관없는 듯 살아왔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집 앞의 눈을 쓸어 내듯이 조금씩 내 주변을 아끼며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