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모르는 것, 믿는 것

테오도르 준 박이 쓴 참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의 솔직한 종교관과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갖고 있는 종교관과 세계관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내가 진정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믿고 있는 것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 가지는 구도자로서 모르는 것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함이고, 다른 한 가지는 도피자로서 믿음을 통해 절대자를 만들어두고서 마치 부모에게 기대는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하고자 함이라고 했다. 모든 종교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미묘하게 섞인 채 종교를 갖는다.

살면서 오해와 사실이 뒤섞이고 거기에 편견과 착각이 들어와 뒤죽박죽이 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모르는 것을 착각하고 그것을 믿다가, 결국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과학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것들을 정확히 구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하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어떤 현상이나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반드시 이것을 따져보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화가 났다거나, 평범 무난하게 아무런 문제 없이 산다거나, 즐겁게 산다거나, 슬프게 산다거나 하는 등의 판단을 서슴없이 하곤 하는데 사실 이 모든 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표정을 살피거나 행동으로 보아서 어떤 짐작을 하고 그것을 믿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는 게 아니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과 사실 또한 별개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마주치는 바른법무법인 앞의 아저씨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오로지 단 한 가지, 그 아저씨의 생김새와 그가 그 앞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 어떠한 메시지를 가지고 시위를 한다는 것 뿐이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기분으로 앉아있을 지, 바른법무법인은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아저씨의 표정에서 화가 났다고 생각을 했고 그 아저씨 마음 속에 화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지레 짐작해서 믿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절대로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해서도 안되고, 믿는 것을 사실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