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없이 살면 안 되나요?

계획 없이 살면 안 되나요?,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를 읽고

슈발이 바로 도시의 ‘브리콜뢰르’(손재주꾼)다. 슈발의 작업실을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계획이 없었을 테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재료와 연장이 널브러져 있었을 게다. 브리콜레뢰르인 슈발은 엔지니어가 아니다. 엔지니어는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른 연장을 갖추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브리콜뢰르는 그렇지 않다브리콜뢰르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모인 잡다한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새롭게 조합한다. 마찬가지로 슈발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뒤섞고 재배치함으로써 탁월한 작품인 ‘이상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궁’이라는 탁월한 ‘성취’에는 ‘계획’도 ‘효율’도 ‘체계’도 없다.

계획이란 문명의 산물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계획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당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 의사가 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에 의사라는 직업이 있고 앞으로 10년 동안은 의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글에서는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정글은 문명 사회와 달리 자연의 지배를 받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고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에서는 ‘브리콜뢰르’라는 개념(bricolarer. bricolage 라는 영단어가 있음.)을 소개한다. 브리콜뢰르는 손재주꾼이라는 뜻으로,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계획과 설계, 그리고 효율적인 실행은 중요하지 않다. 자연적인 환경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이성을 확신한 나머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몇 번의 경제 공황과 전쟁, 그리고 팬데믹까지 거치면서 점점 그 믿음은 약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주식 투자자는 주식 시장에서 20%의 수익을 거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현명한 주식 투자자라면, 현재의 주식 시장을 살펴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매 순간 할 것이다. 투자자의 목표는 단지 최대한 많은 수익을 거두는 것이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는 매순간에 따라 판단한다. 주식시장과 같이 예측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계획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2020년 초, 전세계 어디에서도 팬데믹이 오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미리 대비한 사람 또한 없다. 하지만 COVID-19 팬데믹은 찾아왔다. 그리고 2020년에 계획을 세워두었던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노래방 장사가 되지 않아 폐업을 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잠정적으로 미루고, 힙합 페스티벌로 사람을 모았다가 개최는 커녕 현금 조달이 되지 않아 환불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이번을 계기로 변화와 대응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